익숙한 기분이지만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그때도 그랬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우린 매주 업데이트하는 상품을 완판 시켰다. 수량이 적은 탓도 있었지만 그땐 빈티지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독보적이었다. 열 개를 업데이트하면 열 개가 팔렸다. 스무 개면 스무 개. 서른 개면 서른 개. 함께 하던 친구는 매주 조금 더, 조금 더를 원했지만 나는 비아냥을 일삼았다. 그땐 무엇이 싫어서, 무엇을 원해서 비아냥하는지도 몰랐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친구가 꼴사나웠다.
혼자서 장사를 할 때도 그랬다. 큰 행사를 진행하면 잔불씨가 남는다. 장사꾼은 그 불씨를 이용해 땔감을 대고 부채질을 해서 한 철을 버틸 수 있다. 그럼 다시 행사를 진행할만한 때가 온다. 이것을 반복하면 잔불씨의 크기가 커지고 어느새 잔불씨가 첫 번째 행사의 크기만큼 커진다. 하지만 나는 행사 하나를 치르고 나면 진이 빠지고 말았다. 잔불씨를 이용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행사와 행사로 겨우겨우 버틴 나날이었다. 땔감을 대고 부채질을 했다면 곤궁함을 주제 삼아 글 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난이 따르더라도 나를 풍요롭게 하는 일로 삶을 채우고 싶었다. 그중에 글 쓰는 일이 있었다. 책을 만든 적도 없고 관련된 일을 해 본 적도 없다. SNS를 통해 구독자를 모으고 내 글을 보내기로 했다. 위태로운 결정이었다. 생활비는 바닥났고 당장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구독자가 모였고 생활비도 충당했다.
두 번째 연재를 결정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재를 위해 11월을 기획에 투자하기로 했다. 수입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는 모델로 만들고 싶었다. 일주일만 쉬고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장 먹을 것은 충분했다. 입을 것도 필요 없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이 계획이 내게 무엇을 주는지 찾을 수 없었다. 비관적이고 무기력한 11월을 보냈다. 하지만 여윳돈이 있다면 좋아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고 싶고 지지하는 단체에 후원금도 보내고 싶다. 산, 들, 바다가 접한 곳에 넓고 다정한 집을 짓고 촌스러운 수영장을 꾸며 사람들을 모아 먹고 마시는 일을 꿈꾼다. 움직이지 않는 내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왜 움직이지 않는가?' 미친 듯이 고민하고 염려했다.
고민과 염려 속에서 익숙한 기분임을 알아차렸다. 늘 작은 성취와 큰 만족에 안주하며 살았음을 깨달았다. 큰 발견이다. 비상하고 합리적인 두뇌는 투자되는 노력과 승리의 쾌감을 비교한 뒤 '현상 유지'라는 그럴듯한 제안을 내어 놓는다. 그 제안에 멀리 세워둔 큰 목표들이 흐릿해진다. 결국 움직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생각한다. 얕고 작은 것들을 성공 시키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위인 혹은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나를 비교해봤다.
나는 동기를 만들지 못한다. '현상 유지'라는 제안에 익숙한 몸과 마음은 흐릿해지는 목표를 바라보며 지금에 만족하라고 타이른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상현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해라. 제발. 그게 네가 원하는 것 맞잖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쩐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동기가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속물적으로 보이는 것이 싫은 걸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할까?
마지막으로 비아냥을 뱉었던 날. 친구는 절교를 선언했다. 그 시절 나는 피해의식과 열등감 탓에 공격성만 남는 맹수 같았다. 맹수에 대한 보편적 오해는 거칠고 사나우며 강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겁함도 맹수의 모습 중 하나. 정면 돌파보단 기습에 능하고 본능적으로 약자를 노린다. 친구와의 대화창에 남긴 비아냥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 내 표정과 마음도 기억난다. 뜻이 맞지 않는 친구에게 발톱을 세운 비겁한 맹수가 기억난다.
그 맹수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친구야, 돈도 돈인데 조금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고 싶다. 뭐가 없을까? 같이 고민해 줄래?" 이렇게 글을 남기니 엉키고 설킨 존재의 일부분이 풀어지는 기분이다. 멀리 사랑하는 여인. 산. 들. 바다. 다정한 집과 수영장. 그곳에 소외받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한 번의 연재로, 지금 가진 것으로 당장 눈앞에 놓지 못해 조급했다. 결국 '현상 유지'라는 관성에 지배 당했다. 빙글빙글. 시곗바늘을 반대로 돌린다. 멀리 보이던 목표들이 지금으로 오는 길에 흩어졌다. 그것들을 쓸어 담았다.
작년에 산 울 코트를 꺼냈다. 안주머니 깊이 그것들을 넣어두고 거리고 나섰다. 식당들이 보인다. 배가 고프다. 주머니를 뒤졌다. 가진 것은 꿈이 전부다. 돈을 벌어야겠다. 글을 써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비록 수영장은 없지만. 산. 들. 바다가 접한 곳은 아니지만. 소외받은 이들 잠시 몸 녹일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언젠가 다정한 시골집에 그대들 모두 초대해 지나간 슬픔을 겨룰 수 있게. 써야겠다. 돈을 벌어야겠다. 악착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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