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잘 못 설정한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일까? 이 시간 위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인풋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입력도, 출력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을 보냈다. 삶의 관성은 수시로 작동해서 자꾸만 무언가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를 들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독서량을 늘리고 글쓰기를 훈련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지만 어설프게 연재를 시작하고 밑천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다시 독서와 공부에 전념했으면 좋았을 텐데 곧바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모든 게 출판했을 때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결국 돈 때문인가? 이럴 땐 내가 조금 가엽다. 하지만 자기 연민은 허무하다. 용기를 내고 진실된 선택을 해야한다. 나에게 솔직해지자.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운동은 빼먹지 않는다. 고강도는 아니어도 30분 이상의 산책과 1시간가량의 요가 또는 근력 운동은 반드시 챙긴다. 어제는 복잡한 고민을 털기 위해 1시간 정도를 걸었다. 늘 발자국을 떼는 것은 힘겹지만 첫 발자국을 떼고 나면 목표가 생긴다. '오늘은 정처 없이 걷고 싶네.'라는 목표가 떠올랐다. 30년을 넘게 산 동네를 정처 없이 걷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변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산책의 큰 동기이자 즐거움이다.
오랜만에 만덕 3터널 공사 현장을 지나게 됐다. 몇 년째 흉물스러운 단면을 드러낸 백양산에 큰 구멍 두 개가 뚫려있다. 처음 다이너마이트를 발파하던 날. '펑'하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쏟아지는 산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년에 걸쳐 발파가 진행됐고 구멍은 점점 깊어져 이제는 산이 쏟아지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원래 속 병은 소리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 내장 기관이 아프고 다치면 통증도 증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발파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산을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기 힘들다. 물과 나무, 흙과 바위의 유기체. 그것의 배꼽에 다이너마이트를 꽂고 정기적으로 누군가 터트린다는 상상. 그 통증을 상상하며 정기검진을 떠올리는 나도 역겹지만, 처절한 단면 위에 세워진 안전제일 표지판을 보며 인간을 향한 증오를 넘어 연민을 느낀다.
가엽고 불쌍한 존재들. 얼마나 편리해져야, 얼마나 반짝거려야 살아낼 수 있는 걸까? 우린 모두 죽어 마땅하다.
어릴 적 다니던 중학교를 향해 걸었다. 흐린 날, 담장에 늘어진 아이비가 바삭하게 말라 조금 음산했다.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아주 잠깐 해가 드러났다. 해를 받아 반짝이는 아이비 뒤로 그림자가 선명히 새겨진다. 산책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느린 걸음 속에서 만나는 찰나의 순간. 그것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지만 나는 느리기에 잠시 잡아둘 수 있다. 그리고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 보다 만나게 될 찰나에 기대를 갖게 된다.
엄마와 나는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 중인 나처럼 엄마도 퇴직 후 하고 싶었던 일을 준비하고 있다.
엄마는 재봉틀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연초부터 엄마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도면을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는 엄마를 보며 올해 안에는 꼭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산책 중 아주 저렴한 상가 자리를 만났다. 엄마가 어마어마한 돈을 욕심내는 것도 아니어서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거뒀다. 내실을 다지는 시기에 다가오는 유혹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많은 일을 그르쳐 봤다. 조금 더 단단하고 건실한 기초를 다진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 솔직히 정답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그렇게 해보고 싶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시간이고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호흡으로 세상에 서 있기'
지금은 돈 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믿을 뿐이다. 정답일 거라고. 정답으로 만들겠다고 나를 믿을 뿐이다.
만덕에 이런 곳이 생기다니. 어린 시절에는 롯데리아 하나 생긴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장사가 되지 않아 이내 문을 닫았던 깡촌 마을인데 꽤 도시적인 감각의 카페가 생겼다. 한 번 들어가 볼까 했지만 텀블러가 없어 그만뒀다.
개인적으로 참 반가운 일이다. 하나의 주거 단지가 조성되면 마트, 식당,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1차 적으로 투입된다. 그 주변에 술집과 노래방 또는 피시방 등 유흥거리가 자리를 잡는다. 아마 도시 개발에 힘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필수 요소들이지만 대한민국 정도의 국가에서 당장 돈벌이가 되거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산업들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필수'라는 단어에 문화생활도 포함되면 얼마나 좋을까? 국가나 시에서 관리하는 으리으리한 미술관 말고 개인의 감성이 듬뿍 담긴 작고 친근한 미술관이나 예술가의 공방과 카페가 어우러진 공간도 함께 자리 잡으면 좋겠다. 물론 많은 동네에서 그런 움직임이 생기고 있지만 어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움직임은 아니다. ‘필수'라는 단어에 포함되기엔 부족하다.
어쨌든 참 반가운 공간이었다. 슬쩍 둘러봤을 때 케이크와 음료를 파는 것이 전부 같았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가 이런 낙후된 동네에 자리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앞서 말한 움직임들의 전초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적 감각을 겸비한 예술가들, 예술적 감각을 중요시 여기는 사업가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얼마나 건강하고 즐거운 골목이 많아질까?
21.02.24 산책. 21.02.25~2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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