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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해외입국자의 송구스런 자가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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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떠난 스페인. 결국 3개월 만에 돌아왔다. 코로나 탓에 3개월 중 1개월을 집 안에 갇혀 지냈다. 스페인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필수 생활 용품 구매를 제외하면 집 밖을 나설 수도 없다. 그마저도 경찰의 검문을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 그 와중 무엇도 멈추지 않고 확산을 막아내는 고국의 소식은 자부심과 함께 기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잇다른 해외입국자들의 민폐스러운 행동 탓에 돌아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입국장에서의 눈총이 걱정스러웠다. 4월 11일 오전 7시. 수십 시간을 대기하고 경유한 끝에 도착한 인천 공항. 눈총은 커녕 최대한 빠르게, 빠짐없이 검사하고 다음 단계로 입국자들을 안내하기 위한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KTX를 타기 위해 대기중일 때도 담당 직원은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질문에 친절히 답해줬다. 그제서야 모두가 이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타계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 민폐스러운 짐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짜여진 동선을 따라 격리 장소로 이동했고 시민들과 접촉은 한 번도 없었다.

 

현관으로 햇살이 들어오는데 나갈 수 없다. 이 정도 답답함이 의료진과 관련 업무자들의 노고에 비할 수 있을까?

 

격리를 시작한지 이틀째. 어수선한 집을 정리하고 현관에 앉아 해 구경하는데, 휴양인지 격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이 시간이 송구스럽다. 햇살이 현관까지 찾아와 나오라 유혹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인천 공항에서, 부산역 진료소에서 녹초가되어 분투중인 의료진과 군인을 만났다. 격리가 시작된 일요일 오후 주말을 잊고 찾아온 보건소 직원을 만났다. 부산역 진료소에서 어떤 입국자는 “왜 다른 지자체들은 인천 공항에 부스를 두고 있던데 부산은 없나요?”로 시작해 현 시스템의 문제점을 열거하며 진료팀을 닥달했다. 정말 시정을 원한다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민원하면 될 것을 가뜩이나 지친 이들을 붙잡고 해야했을까? 스마트함이 넘쳐흘러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쌍욕이 목젖을 칠 때 두리발이 도착해 나를 싣고 목적지로 향했다. 두리발 아저씨는 한 며칠 돕겠거니하고 나왔는데 4월 내내 해야될 것 같다 하신다. 방진복에 가려 눈만 겨우 보이는 아저씨를 기억하고 싶어 기사 면허증 사진을 눈에 담았다.

가족들의 배려 덕에 조용한 시골집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이튿날 일요일. 보건소 직원들이 생필품을 한 가득 싣고 찾아왔다. 부족하다 느낀 사항들을 친절히 설명하고 강압적이어도 상관없을 격리 권고를 아주 친절히 조심스레 전하고 떠났다. 감탄을 연발하며 식료품을 정리하는데 거실 티비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대형 교회에서 진행된 부활절 예배 소식. 지난 3개월간 스페인에서 생활했다. 스페인은 인구의 94%가 천주교로 부화절은 그들에게 가장 큰 행사다. 3월 중순을 넘기자 시청 뒤 공터는 통행을 제한하고 모든 공간이 객석으로 변했다. 도시는 부활절에 촛점을 맞춰 숨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인도 코로나를 피할 수 없었다. 도시는 호흡을 멈췄고 당연히 부활절 준비도 중단됐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확인한 것은 성 목요일, 예수가 체포된 날. 그들에겐 부활절만큼 뜻 깊은 날. 밤 새워 도시를 걷는다는 그날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목사님의 생각일까? 사업가의 생각일까? 과연 그들은 94%의 국민이 믿고 역사의 시작과 끝에 늘 종교가 있었던 사람들 보다 얼마나 더 특별한 신앙심을 가졌기에 굳이, 굳이 교회에 모여야했을까? 한 60대 남성은 거짓 연락처를 남기고 입국해 목욕탕을 이용했단다. 20대는 술집으로, 또 누구는 친구를 만났단다. 때로 룰이라는 것은 불편할 수 있음에 동의한다. 하지만 룰은 다수의 불편과 편리를 고민한 끝에 탄생한 약속이다.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룰을 만들고 지키는 나머지를 기만하는 일. 밤낮없이 일하는 의료팀은 바보라 사서 고생중일까? 업무 범위 밖의 일을 급하게 배워 주말까지 출근하는 공무원은 원래 일 벌레일까? 외출을 자제하는 시민들은 모두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일까?

우리 해외입국자들이 받고 있는 것은 배려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귀국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구인 중 극소수인 한국인, 그 중에서도 극소수인 해외입국자들에게만 제공되는 양질의 국가 서비스. 이건 분명 배려다. 해외에서 입국한 것이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운이 나빴지만 신세를 진 것도 분명하다. 지금 받는 배려는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없다. 쾌척할 재산도 기술도 없다면 제공해주시는 것 감사히 받는 것. 사회로 건강히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납세하는 것.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이 멋진 국가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의료진을 비롯한 코로나로 노고가 많은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또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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